정선미 씨가 해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화산’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부터이다. 자연스럽게 지구과학이라는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관련된 학과를 찾다가 인하대 해양학과에 진학했다. 학부시절 연구소에 계신 여러 박사님들이 오셔서 강의를 했었는데, 그때 극지연구소에 계신 박사님으로부터 극 지역에서의 연구활동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 것이 그녀에게 큰 비전을 던져주었다. 아무나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은 점점 커져갔고,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극지연구소 캠퍼스에서 동경을 꿈으로 키워가고 있다. 현재 UST-KOPRI 극지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얼마 전, UST 여우회 (UST 여성 과학도 동아리)에서 자신의 전공분야와 연구내용을 특유의 입담으로 발표해, 여러 여학우들에게 극지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극지과학은 생소한 학문일 수 있지만 쉽게 말하면 극 지역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과학적으로 공부하는 학문이에요. 참~ 쉽죠?!” 극지는 남, 북극뿐만 아니라 극한 환경 즉 에베레스트와 같은 고지대, 극한추위, 극한더위의 환경도 포함하는 연구분야다. “UST에는 현장학습이라는 과목이 있어요. 실험실 내의 실습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연구할 자료가 어떤 환경에서 생성되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을 알고 논문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남극 세종기지와 인근해역을 조사하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특이한 환경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고, 자연 그대로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여러 테스트를 거쳐 남극을 다녀온 극지연구소 캠퍼스 정선미 씨는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가슴이 뛴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중 최남단인 칠레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세종기지가 위치한 남극 칠레 프레이에 도착. 최소 5일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던 만큼 남극에서의 추억거리는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다. “도착 첫날 기대에 부풀어 펭귄마을로 갔는데 발에 무언가 물컹하더라고요. 펭귄 시체를 밟은 거예요.”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한참동안 멍해 있었다고 한다. 죽은 동물을 치우지 않는 이유는 남극에서는 사람이 생태계에 관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안가에 커다란 고래뼈도 수십 년 동안 한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선미 씨는 러시아 내빙선 ‘유즈모’에 승선하여 남극반도 주변의 드레이크해협의 물리, 지질을 탐사했고. 10일 가량 기지 주변을 조사했다. 기지주변의 해수면 변동을 증명할 수 있는 유기물질 및 암석자료를 찾는 것이 주요 조사내용이었다. 인근 지역으로 조사를 다녀오다 펭귄 몇 마리가 물속에서 육지로 ‘퐁’하고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진짜 내가 남극에 왔구나.’하고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한다. 웨델 해표가 인기척을 느끼자 놀란 나머지 옆에 있는 웨델 해표에게 실례를 하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황당하고 우스워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 떠올릴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올해도 남극을 다시 찾을 계획인 정선미 씨. ‘palmer 호’라는 쇄빙선을 타고 lasen 빙붕지역을 탐사할 예정이다. 빙붕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지역으로 그동안 타 지역에 비해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다. 참가 과학자들과 함께 여러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탐사를 할 것이다. 물, 해수, 빙하, 지질 30m 가량의 core 자료의 획득, 시료처리 및 해수내의 diatom, 해수 및 퇴적물 내 미화석의 동위원소 분석 등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대한민국과 지형, 기후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남극생활에 적응하려면 남다른 건강관리가 필요해요. 여자라고 남극이 봐주는 것 없으니까요.^^” 남극에 가서 여러 체험과 깊이 있는 실험을 하게 될 선미 씨. 학문의 열정만큼 체력적인 부분도 뒷받침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꾸준한 운동을 하고 있다.
모든 맡겨진 일에 열심히 하는 정선미 씨는 오늘도 실험실에서 지난번 남극탐사를 통해 가지고 온 퇴적물을 연구하는 중이다. “지구 기후변화는 한, 두 가지로 알아내기 어려운 분야라서,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노력해서 좀 더 신뢰할만한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극지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이번에도 퇴적물 내에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기후의 변동에 대해 연구할 예정으로 이번 선박조사에서 논문에 필요한 타 실험실의 실험도 배우고,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견문을 넓힐 생각이다.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등 전 지구적 환경변화가 커다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 올해로 남극과학연구단(월동대)가 세종기지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한지 22년째가 되었다. 이제 그녀가 선배 연구자들이 밟아온 극지연구의 길을 이어,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자, 극지연구의 주역으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