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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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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이야기"(5월 둘째주) 내 집까지는 자네 말을 타고 오게

  • 감사실
  • 조회 : 1116
  • 등록일 : 2017-05-08

 

 

최부(崔溥, 자는 연연(淵淵), 호는 금남(錦南), 1454~1504)

송흠(宋欽, 자는 흠지(欽之), 호는 관수정(觀水亭),지지당(知止堂) 1459~1547)

 

조선 전기 문신인 최부와 송흠이 함께 홍문관에서 일했을 때의 일화이다. 최부는 나주, 송흠은 영광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향길이 가까워 둘은 함께 휴가를 가게 되었다.

 

휴가 중이던 어느 날 송흠이 4, 5리 길인 최부의 집을 찾아갔다. 점심까지 잘 얻어먹었는데 최부가 뜬금없이 물었다.

 

"자네, 무슨 말을 타고 왔는가?"

 

"역마(驛馬)를 타고 왔지요."

 

"역마는 자네가 서울에서 내려올 때 집까지만 타라고 나라에서 내준 말이 아니던가?"

 

"......"

 

"내 집까지 온 건 자네의 개인적인 사행(私行)길인데, 어찌 나라 물건(公物)인 역마를 타고 올 수 있단 말인가?"

 

점심밥까지 잘 얻어먹고 느닷없이 힐책을 받게 되자 송흠은 화로라도 뒤집어쓴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마 역마를 다시 타지는 못하고 끌고서는 자기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갔다.

 

휴가를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가자, 최부는 송흠을 용서하지 않았고 역마를 사사로이 쓴 일을 조정에 아뢰어 송흠을 파직시키도록 했다. 송흠은 홍문관을 떠나면서 최부를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였다. 최부가 송흠에게 타일렀다.

 

"자네는 나이가 젊네. 후에는 조심해야 할 것일세."

 

뒷날 송흠은 전국 각지의 수령을 역임하였고 이조판서, 병조판서에 판중추부사 등 중앙 고관대작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이때의 일로 깨달은 바가 있어서인지 평생을 가난한 선비처럼 청빈하게 살면서 청백리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당시 조선의 법에 따르면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 7~8마리의 말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송흠은 새 임지로 갈 때마다 늘 자신과 아내, 노모가 탈 세 필의 말만 사용하고 검소하게 행차했다 하여 삼마태수(三馬太守)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이는 청백리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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